역사는 모든 지식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옛날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역사하면 항상 나오는 4대 문명이 있죠.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입니다. 큰 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는 강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겠죠.
여기서 문명과 문화는 굉장히 비슷하지만, 문화는 어떤 민족이 만든 정신적인 면이라 할 수 있고, 문명은 물질적인 면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음주 문명, 운전 문명이라 하지 않듯이요.
시대적으로 제일 앞선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을 통해서 볼 때 현재까지는 메소포타미아가 조금 더 앞섰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두 문명을 합쳐서 오리엔트 문명으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죠. 세 번째는 인도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 내에서는 자기들이 최초 문명이라 주장하며,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죠.
우리가 시대를 구분해 볼 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역사 이전의 시대를 선사시대, 역사를 기록한 시대를 역사시대라 볼 수 있어요.
인류의 역사는 사서에 대해서 검증과 해석을 하고 추적해야 밝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어요.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이지만 그것을 기록한 역사서에 대한 해석은 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역사의 기록은 처음에는 그림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고 여러 모양을 문자로 기록한 상형문자와 점토판에 기록으로 남긴 쐐기문자가 있습니다. 상형문자보다 쐐기문자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어요.
문자는 백성들에게는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한자를 일반 백성은 모르고 양반들만 점유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정말 대단한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신전 안에 거대한 기록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7세기 약 2,600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단군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오기 300년 전이라 할 수 있죠^^
그 피라미드의 설계자의 이름까지 나와 있는데, 이모 텍이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제일 높은 벼슬을 했던 건축가이면 공학자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대단하죠? 돌을 깎아 내다가 왕조가 바뀌어 멈춘 채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고 해요.
피라미드의 건설에 있어서 채석장도 있었고 돌을 어떻게 운반했는지도 거의 밝혀졌다고 볼 수 있어서 이제는 불가사의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어요.
놀라운 것은 많은 인력을 어떻게 동원하고 관리하며 어떤 공법으로 튼튼하게 지었는지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돌 하나의 무게가 2톤에서 20톤까지의 경우가 있다고 하며, 추정하면 10만명의 인원이 10년~12년 만에 지었다는 기록까지 있답니다.
다녀오신 분의 말에 의하면 영화에서처럼 트랩(함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되나, 정설은 아니라고 해요.
아무튼 이집트의 기록물이 이 정도로 자세하게 남아 있다고 해요.
건축물의 사이즈를 보면 그 문명의 기술이 어느 정도였으며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영국의 스톤헨지의 문명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슷한 시기라고 하지만, 몇백년에 걸쳐서 만들었다고 하니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비교할 수는 없겠죠.
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구라트는 벽돌을 만들어 쌓은 건축물이에요. 사막이 많고 큰 돌을 구하기 힘들었고, 채석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걸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피라미드와 비슷한 규모의 지구라트를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 벽돌을 어도비(Adobe)라고 부르는데, 컴퓨터 프로그램 생각나실 거예요.
이러한 건축물과 유적들을 보면 얼마나 큰 문명이 존재했는지를 알 수 있겠죠.
또한 4대 문명 이외에도 곳곳에 크고 작은 문명들이 많이 있었다고 해요. 프랑스의 거석문화와 태국,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발견된 농경의 흔적을 보면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것은 알 수 있어요.
후대를 위해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특히 이집트의 기록문화는 엄청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존재한 것보다 더 크게 부각되었을 수도 있다고는 합니다. 우리도 좀 더 과장해서 뭔가를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죠.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보면 피라미드를 지을 때 노예를 동원해서 억지로 무덤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지금은 당시의 나일강 범람이 많아 측량하기 위해 수학과 계측학이 발달했는데, 범람할 때는 먹고 살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건축물을 지으면서 일자리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피라미드가 남아있는 이유는 납득이 가는 건축 시스템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인력들이 지냈던 숙소나, 인부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지급된 급료가 노예 수준은 아니었다고 하니 이집트의 체계가 굉장히 대단했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다음 역사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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